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혁거세 거서간 (문단 편집) == 상세 == 신라의 왕위를 [[경주 김씨|김씨]], [[석(성씨)#s-2|석씨]] 등 다른 성씨가 물려받기도 하지만, 혁거세는 단순히 부계 혈연 개념에 입각한 조상이 아니라 건국의 시조왕으로서 성씨에 관계없이 공통으로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었다. 신라에서 전왕이 [[승하]]하면 후임자가 일단 왕위를 물려받은 뒤, 즉위 다음해 1~2월에 신라 고유의 제사 시설인 [[시조묘]](이후 [[신궁]])에서 제사를 거의 반드시 직접 지냈다. 이는 신라의 일종의 관례적인 [[즉위식]] 개념이었다.[* 또 다른 추정으론 석씨, 김씨가 박성의 지파로 흡수되어 같은 왕족 계급의 취급을 받았다고 하는 것이다. 즉 김씨, 석씨는 박성내에 김씨 지파, 석씨 지파였다는 것이다. 어차피 같은 집안이기 때문에 혁거세를 시조로 모시는데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.] 현재 전하는 [[박혁거세]]라는 이름은 朴赫居世라는 [[한자]] 표기를 현대 [[한국어]]로 음만 따서 읽은 것이나, 과거 신라에서 한자를 읽고 쓰던 방법은 지금과 조금 달라 마치 지금의 [[일본어]]와 같이 [[향찰|음독과 훈독을 섞어 썼다]].[* [[향가]] 같은 신라의 [[문화]]에서도 이와 같이 나타난다.] 혁거세 중 한자 赫(붉을 혁)과 世(누리 세)는 각각 뜻으로 읽기 때문에 원래 발음은 '불거누리', '불그누리', '불그뉘' 등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.[* 물론, 정확히 어떻게 불렀는지는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여 아무도 모른다.] 실제로 《[[삼국사기]]》에는 "이명으로 '불구내'(弗矩內)라고 한다"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[[순우리말]]인 '붉은 누리'를 한자로 음사하여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며 '불구내'와 '혁거세'는 같은 단어를 서로 다르게 쓴 것으로 보인다. 한편 이름의 뜻이 '누리의 붉은 햇님'인 [[이진아시]]과의 연계가 지적되기도 한다. >왕위를 거슬한(居瑟邯)이라고 하였다.,,【거서간(居西干)이라고도 한다. 처음 입을 열었을 때에 ‘알지(閼智) 거서간(居西干)이 한 번 일어났다.’라고 하였기 때문에 그 말에 따라 이렇게 부른 것이다. 이후로 왕의 존칭이 되었다.】,, >---- >《삼국유사》 《[[삼국유사]]》 〈기이〉에 의하면 스스로를 '알지 거서간'(閼智居西干)[* 《삼국유사》의 본문에 있는 저자 [[일연]]의 주석.]이라 일컬었다. 후대의 [[김알지]]가 연상되는 이름이지만 [[부여]]와 [[고구려]]의 시조 신화에서 [[해모수]]나 [[동명왕]]이라는 이름이 공통으로 등장하듯이 고대의 시조 신화에서 이런 식의 어휘 공유는 놀랄 일은 아니다. 훗날 신라에서 '태조'로 불린 인물이 김알지의 아들 [[성한왕|김성한]]으로 유력시되는데 이와 연관지어 '알지'가 임금을 가리키는 일반 명사 중 하나였다는 주장도 있다. 《삼국유사》의 〈선도성모수희불사〉에 의하면 [[알영부인]]과는 남매 관계로 묘사된다. 하지만 《삼국유사》의 경우, [[김부식]]이 [[중국]]에서 듣고 기이한 이야기라고 부정한 이야기에 상상력을 더해 전설로 적은 것이라 《삼국사기》에 부인으로 나오는 게 더 유력시된다. 이 역시도 신화에서 남매가 부부를 겸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특이한 일은 아닐 것이다. 또한 위의 '알지'라는 이름과 연결시킨다면 알영부인과의 연관성이 더욱 강화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